아내는 대표, 아들은 이사…'패밀리 오피스'로 절세효과 높인다
재테크 판이 바뀐다
(5) 신흥부자들의 자산관리 비결
상속·증여 등 절세방법 컨설팅
수백억 벤처 신화 쓴 자산가들
가족들과 지분 나눠 법인 설립
세율 낮은 법인세로 복리 효과
오너 2세 자산 승계까지 관리
상속 컨설팅 이후 맞춤형 플랜
아들·손주 등 주주로 함께 운용
자산가 A씨는 기업을 매각해 벌어들인 돈 수천억원을 관리하기 위해 최근 한 증권사의 패밀리오피스 팀을 찾았다. 그가 “부를 불리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자녀에게 남겨주고 싶다”고 하자 MFO팀은 채권 등 안전자산 70%, 고위험·고수익 자산 20%, 현금 10%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수익률이 연 6~7%가량 나올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팀은 자녀의 연령대에 맞춰 진로 계획도 짰다. 해외 유학 계획부터 증여를 위한 절세 방안까지 마련한 것이다. A씨는 이 팀에 업무를 맡겼고, 증권사는 이 한 건으로 수억원의 수수료 수입을 얻었다.
자산 1000억원 넘는 ‘가족’ 관리
국내 증권사의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통해 가족 단위로 자산 관리를 하는 ‘슈퍼리치’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숫자가 삼성증권의 패밀리오피스 고객 수다. 17일 증권가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1000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고소득층 가족만 따로 관리하는데 고객 가족 수는 2020년 28가족이었다가 지난해에는 76가족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7월 현재 102곳에 이른다.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의 패밀리오피스 전담팀이 관리하는 가족을 포함하면 3대 증권사가 밀착 마크하는 슈퍼리치 일가는 220곳이다. 자산 규모는 36조원에 달한다. 웬만한 연기금이나 운용사의 자산 규모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국내 증권사들이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20년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뒤 주가가 급등할 때 벤처기업을 창업해 키운 뒤 매각하는 사례가 많아진 게 국내에서 이 서비스가 확산한 배경”이라고 했다.
패밀리오피스로 여러 고액 자산가가 모였을 때 생기는 이점 중 하나는 주요 연기금에 준하는 수준의 자금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가족 단위의 자금이기 때문에 각 개인이 모이는 일반 자산관리(WM)보다 더 큰 돈을 동원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주요 증권사의 패밀리오피스 팀이 움직일 수 있는 돈은 조 단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력이 커지면 투자은행(IB) 거래 유치 협상 시 옵션, 금리 등을 더 유리한 조건으로 할 수 있다.
자산가 B씨는 최근 증권사 패밀리오피스 팀의 주선으로 상장 기업 메자닌에 수백억원을 투자했다. 이 증권사는 기업 자산을 담보로 잡고 풋옵션까지 넣어 손실 가능성을 없앤 이 상품을 수천억원어치 유치했고, 그중 일부를 B씨에게 판매했다. 이 증권사 직원은 “과거 이런 상품은 기관의 전유물이었지만 패밀리오피스를 통해 개인 자산가들도 투자할 길이 열렸다”고 했다.
국내 최고의 절세 전문가 포진
패밀리오피스는 ‘자산 증식’ 못지않게 ‘부의 이전’에 중점을 둔다. 돈을 버는 것보다 이를 지키고 세금을 아끼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국내 최고의 절세 전문가들이 패밀리오피스 팀에 포진한 이유다.
자산가 C씨는 최근 한 증권사 패밀리오피스 팀의 컨설팅에 따라 자신과 아들, 며느리, 손주 두 명 등 총 다섯 명을 20%씩 주주로 하는 법인을 세웠다. 이 법인에 C씨가 대여금 100억원을 넣고 이 돈을 아들과 패밀리오피스 팀이 함께 운용하도록 했다. C씨가 개인 명의로 운용한 뒤 이를 나중에 물려주면 시작부터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떼지만, 법인으로 운영하면 그보다 낮은 세율의 법인세를 적용하기 때문에 초기 자금이 늘어나 복리 효과를 키울 수 있다.
이 증권사 직원은 “20년 동안 이 방식으로 연 7% 수익률을 내며 운용한 뒤 나중에 수익금을 배당하고 초기 자금을 상속하면 아들 등에게 가는 돈은 총 212억원”이라며 “당장 상속해 아들 등이 직접 같은 기간·수익률로 운용했을 때 생기는 돈보다 12억원 많다”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페이퍼컴퍼니로 '개인비용 처리'…논란은 여전
자산운용에 자녀 개입 없을 땐
실질적 증여로 판단 稅 부과
조세회피 창구로 악용될 우려도
최근 초고액 자산가들이 일가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증권사 패밀리오피스 팀들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절세를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면서다.
대표적인 방식이 법인의 비용 처리를 활용하는 것이다. 한 가족을 위해 존재하는 법인이다 보니 개별 구성원의 ‘사적인 일’과 가족의 ‘공적인 일’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적지 않은 수의 패밀리오피스는 개별 구성원이 사적으로 쓰는 돈도 법인 비용으로 처리해 세금을 아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을 개인의 소득으로 인식하면 최대 49.5%에 달하는 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비용으로 처리하면 이보다 훨씬 적은 세금만 내면 된다.
정부가 올초 법인 명의의 차에 녹색 번호판을 달도록 한 것도 이 같은 조세 회피 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다. 전담 직원이나 가족 구성원이 직접 자산을 운용하지 않고 외부 전문가에게 의존했다가 논란이 불거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법인은 자산가의 2~3세를 주주로 하고, 자산가가 여기에 대여금을 넣어 부의 세대 이전 효과를 누리는 사례가 많다.
자본금으로 처리하면 주주인 후손이 증여세를 내야 하지만 대여금에 대해서는 그런 의무가 없다. 대여금에 법정 최소 이자율(4.6%)을 적용했을 때 각 주주 몫으로 환산되는 금액이 연간 1억원을 넘지 않으면 무이자로 돈을 빌려줘도 증여로 간주되지 않는다.
한 변호사는 “이 대여금에 대해 과세당국이 추후 ‘실질적으로는 대여가 아니라 증여에 해당한다’로 판단하고 증여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며 “가족 구성원이 법인 운영에 많이 관여할수록 이런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적법하게 절세했다면 괜찮다”면서도 “법인의 돈을 자녀가 함부로 빼서 쓰면 횡령으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여긴 상속·증여세 없는 천국"…韓 떠나는 부자들 몰리는 곳
세금 피해 韓 떠나는 부자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규제 없어
해외법인 차리거나 시민권 획득
절세를 위해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거나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한국인 부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을 확보하려는 각 나라의 경쟁도 치열하다. ‘아시아 세금 천국’으로 불리는 싱가포르, 최근 ‘가상자산 산업 허브’로 떠오른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대표적이다. 각종 절세 혜택과 전문적인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앞세워 한국인 부자들에게 경쟁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17일 투자이민 컨설팅업계에 따르면 국내 개인들이 싱가포르와 홍콩, UAE로 이주하거나 패밀리오피스 등 법인을 설립하는 사례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모두 상속·증여세가 없는 데다 세금 혜택이 높다는 점 때문이다.
김미정 TSMP 파트너변호사는 “한국 고액 자산가들의 부의 이전에 대한 고민은 더 커졌다”며 “로펌, 컨설팅펌, 은행 프라이빗뱅커(PB), 외국계 멀티 패밀리오피스 등을 통해 싱가포르 등에 법인이나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하려는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뜨는 곳은 UAE 최대 도시 두바이다. 중국 등 아시아권 부호들이 최근 대거 옮겨갔다. 이곳은 상속·증여세뿐만 아니라 양도소득세가 없고 법인세도 단일세율로 싱가포르(17%)보다 낮은 9%에 불과하다.
투자이민 컨설팅업체 애니월드는 “가상자산 거래 소득에 대한 세금이 없고 가상자산으로 부동산이나 차량 구매가 가능한 두바이에 관심이 유독 크다”며 “우리나라는 내년 1월부터 가상자산 소득에 과세가 예정돼 있다 보니 올해 들어 고소득자들이 시민권을 취득하는 수요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이민 자문사 헨리앤드파트너스에 따르면 UAE는 3년 연속 백만장자와 고액순자산 보유자의 유입이 가장 많은 곳으로 집계됐다. 이 자문사는 UAE가 올해 6700명의 백만장자를 유치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