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사모펀드 꾸리는 영리치들…韓 넘어 해외 비상장주식 베팅
재테크 판이 바뀐다
(3) 'WM 큰손' 젊은 부자…투자 성향 "돌격 앞으로"
공차·스타일난다 2030 창업자
지분 매각 후 '수백억 자산가'로
영리치들 공격적 상품 선호하고
슬리퍼 차림으로 쇼핑하듯 투자
전화로 채권 수십억 주문하기도
고액자산가 2·3세 소모임 결성
경영학 수업·명상 클래스까지

인터넷 쇼핑몰 스타일난다를 로레알에 6000억원에 매각한 김소희 전 대표, 공차코리아를 유니슨캐피탈에 340억원에 매각한 김여진 전 대표, 새벽 배송 업체 마켓컬리를 창업한 김슬아 대표 등은 모두 30대에 수백억~수천억원대 자산가 반열에 오른 창업자로 유명하다. 올해 서른다섯인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는 올초 상장에 성공해 주식 평가가치가 1조원대에 달하는 거부가 됐다.
2030세대 스타트업 창업자를 중심으로 ‘영리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유튜버, SNS 인플루언서, 가상자산으로 벼락부자가 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뉴리치’도 자산관리(WM) 시장의 신흥 세력으로 떠올랐다.
경영학 수업·명상 클래스까지
7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등에 따르면 현재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고액 자산가는 5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20·30대는 약 10%인 4만90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40대까지 포함하면 14만 명에 이른다.
증권업계에서는 영리치만의 투자 방식 특징으로 ‘공격적인 투자 포트폴리오’를 꼽는다. 영리치는 부동산과 채권 등에 장기 투자하기보다 주식과 주식연계채권 등 단기에 수익을 올릴 수 있고 환금성이 높은 상품을 선호한다. 비상장 주식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해외 데이터센터나 인프라, 대체투자상품 등에 투자하기 위해 직접 조합과 사모펀드(PEF)를 결성하는 사례 역시 늘었다.
자기 주도적 성향이 강해 프라이빗뱅커(PB)가 추천하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따르기보다 자신이 투자하려는 분야를 명확히 정해 PB와 협의하는 일이 많다. 투자 상품을 정하면 대면 접촉 없이 유선으로 수십억원어치 채권을 주문하거나 동네 마실 나오듯 슬리퍼에 편한 옷차림으로 증권사 WM센터를 찾아 수억원의 상품을 계약한다. 강남지역의 한 증권사 PB는 “영리치는 투자 수익률이 다소 낮더라도 자신이 어느 정도 아는 분야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에 대해서도 어느 세대보다 개방적이고 관심이 높다. 하나금융연구소가 2022년 영리치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21%는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투자한 경험이 있었다.
‘미래 CEO 잡아라’
‘자수성가형 영리치’뿐 아니라 ‘금수저형 영리치’를 잡기 위한 증권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증권사가 주최하는 고액 자산가 2·3세를 위한 소모임도 활발하다. 고액 자산가 자녀의 WM뿐만 아니라 기업공개(IPO), 회사채 발행 등 기업금융(IB) 분야의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일부 증권사 PB는 자산가 자녀를 대상으로 명상 등 경영자에게 필요한 자질을 기를 수 있는 맞춤형 세미나를 연다. 해외 부동산 매매와 관련한 자문 사례도 늘고 있다. 기성세대 자산가들의 자녀가 대부분 미국 등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해외 부동산을 증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금수저형 영리치를 대상으로 한 상속·증여 관련 절세 상담도 PB들이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다. 한 증권사 PB는 “최근 절세 목적으로 법인을 설립하겠다는 30·40대 고객이 많아졌다”며 “법인은 부동산으로 임대 수익을 얻고 자녀는 배당을 받는 방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귀띔했다.
류은혁/전예진/배태웅 기자 ehryu@hankyung.com
간판도 없는 도심 속 비밀공간…"3층은 30억, 7층은 100억부터"
찐부자들만 상대하는 PB센터
층마다 자산 규모 정해져 있어
반포 래미안원베일리는 격전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객님.
4층 상담실로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객이 주차장에 차를 대는 순간 1층 직원 서너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다른 고객과 겹치지 않게 짠 동선에 맞춰 고객을 예약된 상담실로 안내하기 위해서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국내 최대 프라이빗뱅커(PB)센터인 KB 골드앤와이즈 더 퍼스트에서는 매일 ‘작전’과 같은 고객 모시기가 하루 30번 이상 이어진다. 자산이 30억원 이상이어야 고객이 될 수 있는 곳이다.
VIP 고객을 데려오기 위한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KB 골드앤와이즈 더 퍼스트는 자산별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간을 세분화했다.
‘골드’라고 이름 붙인 3층은 빠르고 간단하게 금융 업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일반 은행과 비슷한 상담 데스크와 함께 개별 상담실을 배치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더 올라가면 골드층보다 더 고급스러운 4층(와이즈)과 5층(서밋)을 만날 수 있다. 계단으로 두 개 층을 연결한 이곳은 자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더 큰 자산가가 개인적이고 편안한 상담을 원할 때 찾는다.
7층(더 퍼스트)은 VVIP를 위한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들어서자마자 유명 예술가의 조각상이 고객을 반기며 분위기를 압도한다. 상담 시간이 길어질 것에 대비해 화장실은 물론 침대까지 갖췄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창문을 없앴지만 외부 자연광은 실내로 들어올 수 있게 디자인했다. 전용 대여 금고도 별도로 마련했다. 자산이 100억원 이상인 고객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회사들이 VIP를 잡기 위해 ‘격전’을 벌이는 곳도 있다. 서울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아파트 단지에서는 매주 증권사 PB센터가 주최하는 투자 세미나가 열린다. 삼성 미래에셋 KB NH투자 한국투자 유안타증권 등 6개 PB센터가 입주해 고객 모집을 위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마다 월 임차료가 적게는 8000만원에서 많게는 2억원에 달한다”며 “이곳에 입점하지 못한 다른 증권사 지점의 간부들이 질책을 들었다는 것도 업계에 잘 알려져 있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유언신탁·손주 미래설계···후발 증권사, 틈새시장 공략
자산관리시장 판도 바뀌나
삼성·미래에셋 양강구도에 도전
6대 증권사 WM 130兆 급증
유명 PB 거액 주며 영입 경쟁도
특정 증권사가 주도하던 고액 자산가 중심의 자산관리(WM) 시장 판도가 바뀌고 있다. 중소형 증권사까지 차별화된 전략으로 WM 틈새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유망 비상장사 주식을 고액 자산가 전용 상품으로 내놓거나 유명 프라이빗뱅커(PB)를 거액을 주고 영입하는 등 경쟁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요 6대 증권사(삼성증권·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신한투자증권·NH투자증권)의 2020년 말 기준 개인 WM 자금 규모는 261조원에서 올해 5월 399조원으로 3년여 만에 130조원 넘게 불었다. 후발 증권사들이 약진하면서다. WM 시장은 그동안 삼성증권이 독주하고 미래에셋증권이 이를 추격하는 구조였다. 2020년 당시 전체 증권사 중 두 증권사의 WM 자금 비중은 40%를 웃돌았지만 지금은 30%대로 줄었다. 후발 증권사의 자금 증가 속도가 빨라지면서다.
중소형 증권사들도 지방에 퍼져 있는 고액 자산가를 유치하거나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는 방식으로 빠르게 WM 틈새시장 공략에 나섰다. 신영증권은 유언대용신탁 등 고액 자산가 가족을 대상으로 한 전문 신탁 서비스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자산가 자녀의 상속 관리뿐 아니라 갓 태어난 손자, 손녀의 상속·증여 계획까지 설계해준다. 교보증권은 촘촘한 지역 거점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대형 증권사의 관심이 덜한 지방에서 고액 자산가를 유치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고액 자산 WM부문에 팀 영업 체제를 도입했다. PB 한 명이 고액 자산가의 돈을 굴리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채권과 주식, 부동산, 세무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개인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삼성증권에서 초고액 자산가를 전담하던 PB를 영입했다. 하나증권은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와 협업해 유망 비상장사 주식 투자 기회를 고액 자산가에게 제공하는 등 증권사마다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력 사업이던 투자은행(IB) 분야가 위축되자 증권사들이 저마다 블루오션인 WM 시장에 뛰어들어 고객 유치를 위한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