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으로 뽑아 ‘개인금고’에 넣으면 상속세 피할 수 있을까?
금고에 남으면 상속재산, 자녀에게 주면 증여…행방 모르면 ‘추정상속재산’
배준형의 밸류업 클래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부동산 주치의 배준형 수석전문위원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부모님 계좌에서 현금을 미리 인출해 개인금고에 보관했다가 자녀에게 나눠주면 상속세나 증여세를 피할 수 있나?”라는 내용을 다뤄보겠습니다.
실제로 생활비 명목으로 쓰면서 조금씩 자녀에게 이전하면 세무서가 알 도리가 없지 않겠느냐는 기대 섞인 생각이 적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단순히 금융계좌에서 현금을 빼냈다는 이유만으로 상속세나 증여세 대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경우를 구분해야 합니다.
부모가 인출한 현금을 본인 소유의 개인금고에 그대로 보관하다 사망했다면 그 현금 자체가 상속재산입니다. 계좌에 있던 돈의 형태가 현금으로 바뀐 것일 뿐입니다.
반대로 생전에 그 돈을 자녀에게 실제로 넘겼다면 증여 여부를 판단하게 되고, 사망 전에 인출했는데 돈의 행방이나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추정상속재산’ 규정이 문제가 됩니다.
핵심 규정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5조 제1항입니다
이 조항은 피상속인, 즉 사망한 사람이 재산을 처분하거나 자신의 재산에서 현금을 인출한 금액이 상속개시일 전 1년 이내에 재산 종류별로 2억원 이상이거나, 상속개시일 전 2년 이내에 재산 종류별로 5억원 이상인 경우로서 그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으면 이를 상속받은 것으로 추정해 상속세 과세가액에 산입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사망을 앞두고 큰돈을 인출해 놓고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면 국세청이 사용처에 대한 소명을 요구할 수 있고, 법이 정한 범위를 넘는 미소명 금액은 상속재산으로 추정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생활비로 썼다”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피부양자의 생활비나 치료비, 교육비 등은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는 재산으로 법에 명시돼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통상적인 생활비나 치료비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문제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생활비’라는 이름으로 자녀에게 현금을 넘겨놓고 실제로는 저축하거나 부동산·주식 등의 취득자금으로 사용했다면 단순한 생활비로 보기 어렵습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제11조는 인출한 금액 가운데 사용처가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금액에 대해 일정한 완충장치도 두고 있습니다.
용도가 입증되지 않은 금액이
① 전체 처분·인출금액의 20%
또는
② 2억원
중 적은 금액에 미달하면 용도가 객관적으로 불분명한 것으로 추정하지 않고, 그 이상이면 둘 중 적은 금액을 차감한 나머지를 용도불명 금액으로 추정합니다.

6억원을 인출했다면 어떻게 계산될까요?
예를 들어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2년 이내에 계좌에서 총 6억원을 인출하셨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가운데 병원비나 생활비 지출 등으로 실제 사용처가 확인되는 금액이 1억원이라면 나머지 5억원은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금액입니다.
인출액 6억원의 20%는 1억2000만원입니다.
이 금액은 상한선인 2억원보다 작으므로 1억2천만원이 기준금액이 됩니다.
따라서 미소명 금액 5억원에서 1억2천만원을 뺀 3억8천만원이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은 금액으로 추정돼 상속세 과세가액에 산입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인출 규모가 훨씬 큰 경우를 살펴보면 구조가 조금 달라집니다.
만약 사망 전 2년 이내에 15억원을 인출했고 이 가운데 13억원의 용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인출액의 20%가 3억원으로 2억원보다 큽니다.
따라서 둘 중 적은 금액인 2억원을 차감하게 되고, 미소명 금액 13억원 가운데 11억원이 추정상속재산으로 상속세 과세가액에 산입될 수 있습니다.
즉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는 금액 전부가 무조건 상속재산으로 추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법이 인정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금액에 대해서는 상속인이 영수증이나 계좌이체 내역, 진료비·생활비 지출자료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사용처를 설명해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단순히 “가족 생활비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규정은 헌법재판소에서도 합헌 결정이 났습니다
이 조항이 위헌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습니다.
상속인이 자신의 행위가 아닌 피상속인의 생전 재산처분에 대해 사용처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12년 3월 29일 2010헌바342 결정에서 합헌으로 판단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의 목적이 부당한 상속세 회피를 방지하는 데 있고, 현금이나 현물이 실제로 상속됐다는 사실을 과세관청이 완벽하게 입증하기 어려운 반면 상속인은 일반적으로 피상속인의 경제활동을 파악하기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또한 적용대상을 상속개시일과 가까운 일정 기간 및 일정 금액 이상의 처분재산으로 제한하고 있고, 추정규정이어서 반대 사실을 입증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자녀에게 넘어갔다면 ‘추정상속재산’이 아니라 증여 문제가 됩니다
실무에서 중요한 것은 인출된 돈이 실제로 어디로 갔느냐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계좌에서 인출된 돈이 자녀의 계좌로 입금됐거나 자녀 명의의 부동산이나 금융자산 취득에 사용된 사실이 확인된다면, 단순히 사용처가 불분명한 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생전에 자녀에게 증여된 재산인지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증여로 확인된다면 증여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피상속인이 상속인에게 상속개시일 전 10년 이내에 증여한 재산은 원칙적으로 상속세 과세가액에도 합산됩니다.
다만 이미 증여세가 부과된 부분에 대해서는 상속세 계산 과정에서 증여세액공제를 적용해 동일 재산에 대한 이중과세를 조정하는 구조입니다.
반면 인출된 돈이 자녀에게 전달됐다는 사실도 확인되지 않고 다른 사용처도 입증되지 않는다면 앞서 설명한 제15조의 추정상속재산 규정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즉 같은 돈에 증여세와 추정상속재산 규정이 무조건 이중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금이 어디로 갔는지가 밝혀졌는지에 따라 적용되는 과세방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1년 2억원·2년 5억원 미만이면 안전할까요?
여기서 한 가지 더 유의할 점은 1년 2억원, 2년 5억원이라는 기준에 못 미치는 인출액이라고 해서 자녀에게 현금을 줘도 세금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금액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5조에 따른 추정 규정을 적용하기 위한 기준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사망 전에 1억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자녀에게 직접 주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제15조의 2억원·5억원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증여세 여부는 별도로 판단하게 됩니다.
결국 금액을 기준 아래로 여러 차례 나눠 인출한다고 해서 증여세나 상속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현금이면 흔적이 안 남는다”는 생각도 위험합니다
금융기관은 동일 금융회사에서 동일인 명의로 하루 동안 합계 1천만원 이상의 현금을 입금하거나 출금하는 경우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 즉 CTR에 따라 거래자의 신원과 거래금액 등을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자동 보고합니다.
다만 여기서도 한 가지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CTR에 보고됐다고 해서 곧바로 세무조사가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CTR은 일정 기준 이상의 현금거래를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는 자금세탁방지제도입니다.
국세청은 법에서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과세에 필요한 금융정보와 금융거래내역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현금으로 인출하면 금융거래 흔적이 모두 사라진다”는 전제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돈을 인출해 개인금고에 넣어뒀다면 돈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사망할 때까지 그 현금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현금은 사망 당시 존재하는 상속재산입니다.
상속인이 금고 속 현금을 가져갔다면 이를 상속재산으로 신고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신고하지 않았다가 확인되면 상속재산 누락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현금의 행방을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면 앞서 설명한 추정상속재산 규정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은행계좌 → 개인금고라는 장소의 이동만으로 세금이 줄어드는 구조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요?
세법은 자녀에게 재산을 이전할 수 있는 합법적인 제도를 이미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증여재산공제입니다.
성년 자녀가 직계존속으로부터 증여받는 경우에는 10년간 합산해 5000만원, 미성년 자녀는 2000만원까지 증여재산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혼인일 전후 2년 이내 또는 자녀의 출생·입양일부터 2년 이내에 직계존속으로부터 증여받는 경우에는 일정 요건 아래 기본 증여재산공제와 별도로 최대 1억원의 혼인·출산 증여재산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혼인공제와 출산공제를 합한 한도 역시 1억원이라는 점은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실제로 부양의무가 있는 가족에게 지급하는 사회통념상 적정한 생활비·교육비나 치료비 등은 비과세될 수 있으므로, 이를 정상적으로 지급하는 것까지 증여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생활비라는 명목으로 목돈을 미리 건네 저축하게 하거나 자산취득에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출이든 증여든 자금의 흐름과 실제 사용처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두는 것입니다.
계좌이체 내역과 증여세 신고서, 병원비·교육비·생활비 관련 증빙 등을 갖춰두면 훗날 상속이 개시된 뒤에도 자금의 사용처를 훨씬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결국 “현금으로 뽑아 금고에 쌓아두면 세금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은 절세가 아니라 세무 리스크를 키우는 선택에 가깝습니다.
금고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 상속재산이고, 자녀에게 건넸다면 증여 여부를 따지게 되며, 어디로 갔는지 설명할 수 없다면 일정한 요건 아래 추정상속재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5조와 시행령 제11조, 그리고 이를 합헌으로 판단한 헌법재판소 결정도 이런 상속세 회피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자녀에게 자산을 물려주고 싶으시다면, 감추는 방법이 아니라 세법이 허용한 공제와 절차를 정확히 활용하는 방법을 먼저 검토하시길 권해드립니다.
구체적인 세액 산정이나 소명전략은 개별 재산 현황과 증여·인출 시점, 자금의 실제 사용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실행에 앞서 반드시 세무 전문가와 상담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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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현금 인출과 상속·증여에 관한 일반적인 세무·부동산 실무를 설명한 정보성 콘텐츠입니다. 실제 추정상속재산 산입 여부와 증여세·상속세 과세 여부는 인출금액과 기간, 재산의 종류, 실제 사용처 및 증빙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