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 재건축 형님이 움직인다
임장(臨場), 발품을 팔아 관심 있는 지역을 꼼꼼히 탐방하는 것이죠.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전하는 코너 ‘임장생활기록부’. 이달엔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다녀왔습니다.
임장생활기록부 37 – 서울 잠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전경)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소위 ‘강남권 재건축 형님’으로 꼽히는 양대산맥 아파트가 있습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가 그 주인공이에요. 1970년대 고층 대단지로 조성돼 ‘강남 개발의 역사’로 통했고 한때 ‘부촌의 상징’으로도 불렸던 유명 단지들입니다.
워낙 연식이 오래됐다 보니 정비사업도 일찍부터 착수했어요. 1990년대부터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두 아파트 모두 정비사업의 진행 속도가 꽤 더딘 편입니다. 고층 및 고밀도 환경이 발목을 잡았고, 또 ‘강남을 대표하는 단지’라는 상징성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걸림돌이 됐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냉탕과 온탕 정책의 직격탄을 맞은 거죠.
보통 재건축 기간을 최소 10~15년 잡잖아요. 이를 감안한다 해도 통상적인 사업 기간을 크게 웃돌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에서는 두 단지의 정비사업 진행 상황에 주목하고 있고, 향후 재건축만 된다면 강남을 대표하는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저희가 지난번에는 은마아파트 임장을 다녀왔고, 이번에는 잠실주공5단지를 꼼꼼하게 둘러봤습니다.

(롯데타워)

획기적인 고급 아파트로 출발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는 1978년 입주한 3930가구 규모의 대단지입니다. 용적률은 138%입니다. 입지는 매우 훌륭합니다. 초역세권이고, 한강도 아주 잘 보여요. 잠실역 인근에는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월드, 석촌호수 등 다양한 생활 인프라가 있습니다. 잠실역은 서울 지하철 2호선과 8호선이 환승하죠. 자동차를 이용해 올림픽대로에 진입하거나 잠실대교를 건너기에도 편리합니다.
잠실주공이 들어서기 전의 잠실은 섬 같았다고 해요. 더 과거로 올라가 보면, 조선시대부터 누에 사육을 많이 하는 뽕나무가 많아 누에 ‘잠(蠶)’, 집 ‘실(室)’을 써서 잠실이라고 불렸습니다. 잠실에 대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 건 1970년대부터입니다. 한강 물길을 조정하고 공유수면을 매립해 대규모 택지를 조성했고,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잠실주공아파트를 지었어요.

(잠실주공5단지)
잠실주공 1~4단지는 저소득층을 위한 소형 면적 위주였어요. 5층 높이의 저층이었죠. 그 과정에서 추가로 5단지에 대한 계획이 수립된 겁니다. 당시만 해도 잠실주공5단지는 획기적이었어요. 30개 동 전체가 15층으로 지어졌고, 수영장과 헬스장을 갖춘 체육관도 들어섰습니다. 1~4단지가 저층 소형 면적인 반면, 5단지는 중형 중심으로 설계됐어요. 상대적으로 고급 주거단지로 평가받은 겁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모습은 어떨까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아파트 외벽은 군데군데 갈라졌고, 저층 가구에는 덩굴이 외벽을 타고 무성하게 올라가 있습니다. 주차난도 심각해요. 전체 규모가 4000여 가구에 달하지만 지하주차장이 없기 때문에 인도와 화단 등 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일단 차를 세웁니다. 평일 오전 시간인데도 겹주차가 돼 있습니다. 다만 동 간 간격이 빽빽한 요즘 신축 아파트와는 달리 널찍한 동 간 배치는 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세월의 흔적을 품은 노후 아파트
동 내부로 들어가 볼 게요. 복도식 구조인데, 벽에는 곰팡이가 번졌고 곳곳에 금이 가면서 갈라져 있습니다. 바닥 타일은 깨졌고 계단 난간은 녹이 슬어 손으로 잡기 힘들 지경입니다. 계량기가 파손되는 등 오래된 시설물 관리 상태가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하절기 에어컨·인덕션 사용 자제’ 문구가 붙여 있습니다. 많은 입주민들이 내부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했지만 배관 등의 시설이 노후해 불편함을 겪고 있어요. 고층으로 올라오니 한강과 롯데월드타워가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 복도)
이제 재건축 이야기를 해볼까요. 잠실주공5단지는 잠실 일대의 대단지 가운데 마지막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입니다. 2003년 12월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은 후 2005년 정비구역이 지정됐어요. 안전진단은 2010년 6월 D등급으로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잠실주공들은 재건축을 끝낸 상태였죠. 잠실주공4단지가 2006년 레이크팰리스로, 이듬해에는 잠실주공3단지가 트리지움으로 재탄생했고, 2008년에는 잠실주공1단지와 2단지가 재건축을 통해 각각 엘스와 리센츠로 바뀌었습니다.
잠실주공5단지의 재건축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특히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당시 서울시가 아파트는 35층 이하로만 건설이 가능하다는 이른바 ‘35층 룰’을 적용했거든요. 잠실주공5단지 입장에서는 사업성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아파트의 일부를 미래유산으로 보존하겠다는 정책도 주민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또 서울시 요구로 재건축 아파트로는 최초로 국제설계공모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각종 소송전이 제기됐어요.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 계단)
재건축 핵심 단계…뜨거워진 시세
우여곡절 끝에 얼마 전 사업시행계획인가가 확정됐습니다. 서강석 송파구청장이 최근 취임한 이후 1호 결재로 잠실5단지의 사업시행인가를 선택한 거죠. 사업시행인가는 재건축 절차에서 이른바 ‘8부 능선’으로 불리는 핵심 단계인데, 이후 관리처분과 이주, 철거, 착공, 일반분양 등을 거치게 됩니다.
사업시행계획에 따르면 35만8077㎡ 면적에 건폐율 23.59%, 용적률 322.6%를 적용해 6411가구를 건설할 예정입니다. 주택용지에는 최고 49층 4942가구, 복합용지에는 최고 65층 1469가구가 들어서며 판매·업무·문화 시설이 결합된 복합 랜드마크도 함께 조성됩니다. 롯데월드타워에 이은 최고층 건축물이 되겠네요.

(잠실주공5단지 내 안내문)

(잠실주공5단지 주차장 모습)
조합은 올해 중으로 감정평가와 분양신청을 마치고 2027년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한다는 계획입니다. 향후 이주 계획에 대해서는 노년층 입주민은 대부분 떠나고, 일부 중장년층과 젊은 층은 잔류를 택하겠다는 분위기였어요. 사실 삼성물산과 GS건설, IPARK현대산업개발이 2000년에 시공권을 따냈고, 단지명은 ‘빌 라디우스 잠실’로 당초에 계획됐지만 확정되진 않았습니다.
시세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전용 76㎡는 40억8650만 원에, 전용 82㎡는 46억7500만 원에 거래됐어요. 다만 향후 재건축 후속 절차와 이에 따른 변수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추진 속도가 느려질수록 공사비 상승에 따른 사업성 악화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죠. 건설공사비지수는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입니다. 또 얼마 전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 주요 쟁점입니다. 재초환은 재건축사업으로 얻은 이익이 조합원당 8000만 원을 넘으면 초과 이익의 최대 50%를 정부가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죠. 향후 재건축의 사업성과 조합원의 수익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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