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공실' 공포…서울 한복판도 11차례 유찰
꽁꽁 언 수도권 상가 경매
수도권 10곳 중 9곳이 유찰
지난달 경기 낙찰가율 48%
'10분의 1 값' 옥정신도시 상가
공급 과잉에 임대료도 하락
"경매 시장에서 투자자 사라져"
서울 종로구의 한 주상복합 상가(전용면적 26㎡)는 지난달 경매시장에서 감정가의 9.4%에 불과한 3000만원에 낙찰됐다. 무려 11번 유찰된 끝에 감정가(3억원)의 10분의 1 가격에 겨우 매각됐다.
내수 경기 침체에 따른 임대료 하락, 고금리 지속, 소비행태 변화 등이 겹쳐 경매시장에서 수도권 상가가 외면받고 있다. 지난달 경매시장에 나온 수도권 상가 중 열에 아홉은 새 주인을 찾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 지역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지난달 50%를 밑돌아 2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당분간 수도권 경매시장에서 상가가 찬밥 신세를 면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값 상가’보다 더 싸다
경기도 내 상가 평균 낙찰가율은 감정가의 반값 수준이지만 개별 상가로 보면 낙찰가율이 10%를 밑도는 사례도 있다. 광명시 광명동의 한 건물 4층 상가(전용 65㎡)는 지난달 낙찰가율 5.8%인 1600여만원에 매각됐다. 유찰 횟수가 여덟 번에 이른다. 양주 옥정신도시의 한 신축아파트 단지 내 상가(2층·전용 27㎡)는 일곱 번 유찰 끝에 감정가(1억여원)의 8.5%인 890만원에 손바뀜했다. 부천 상동 한 구분상가(전용 4㎡)도 감정가(1900만원)의 8.5%인 160여만원에 낙찰됐다. 지난달 초 인천 연수구 연수동의 한 상가건물 전용 32㎡짜리는 낙찰가율 17.5%인 750만원에 매각됐다.
경매시장에선 ‘반값 상가’보다 더 할인된 가격에 매물이 속출하고 있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 경기 지역 낙찰률(경매 진행 건수 대비 낙찰 건수 비율)은 지난달 14.8%를 나타냈다. 경매시장에 나온 상가 10건 중 1.5건만 새 주인을 찾았다는 얘기다. 서울 상가의 지난달 낙찰률은 15.5%, 인천은 16.5%였다.
임대료 갈수록 하락…“투자자 외면”
경매시장에서 상가 낙찰가율과 낙찰률이 역대급으로 악화하고 있는 건 그만큼 부동산 투자심리가 얼어붙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상가는 직접 점포를 운영하는 일부 자영업자를 제외하곤 대부분 투자 목적으로 매수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매출 감소로 상가 임대료가 약세를 보이는 것도 악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상가 임대가격지수는 3분기 대비 0.14% 내렸다. 중대형 상가는 -0.16%, 소규모 상가는 -0.5%를 나타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낙찰가율도 안 좋지만 낙찰률이 10%대를 나타낸 건 아무도 상가 투자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라며 “내수 경기 침체로 임대시장 자체가 좋지 않기 때문에 싼값에 상가를 매수해도 수익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향후 대출 금리가 낮아지더라도 공실률이 높아 임차인을 못 구하면 투자 효용이 없다는 설명이다.
수도권 내 상가 공급 과잉도 문제로 꼽힌다. 대규모 택지지구에 상가 미분양과 공실이 많은데도 공급이 이어지고 있다. 강은현 법무법인 명도 경매연구소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비 패턴이 온라인 주문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과거 기준에 맞춰 상가를 과잉 공급하고 있다”며 “수도권 외곽 신도시뿐 아니라 서울 한복판 대단지 아파트 상가도 공실이 넘쳐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찰된 상가가 경매시장에 계속 쌓이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상가 시장은 찬바람이 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