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주·락 한곳에 품은 '초고층 빌리지'…도쿄선 매년 5개씩 생긴다
도심복합개발이 도시 경쟁력
(2) 日 곳곳 규제철폐로 '천지개벽'
낡은 동네 들어선 아자부다이힐스
용적률 350%→990% 파격적 상향
도시 全기능 탑재…IT인재들 몰려
'트로피애셋'들에 둘러싸인 도쿄역
66·52층 등 또다른 복합개발 한창
지난달 30일 찾은 일본 도쿄역 청사는 50층 내외 빌딩들로 둘러싸여 있다. 청사 북쪽으로 ‘도쿄 토치 프로젝트’(66층·390m)와 ‘니혼바시 1초메 중앙구역’(52층·284m) 등 공사가 한창인 건물이 쉽게 눈에 띄었다. 트로피 애셋(상징성 있는 부동산 자산)에 해당하는 두 프로젝트의 면적만 서울 을지로1가(6만㎡)와 맞먹는다.
도쿄 도심 곳곳은 10년 전 도입된 규제철폐지역(국가전략특별구역) 효과로 천지개벽 중이다. 도쿄 대개조의 진원지인 마루노우치를 중심으로 북쪽의 니혼바시, 동쪽의 야에스, 도라노몬·롯폰기·시부야에 이르기까지 ‘초승달’ 모양으로 트로피 애셋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전략특별구역 워킹그룹 좌장을 지낸 나카가와 마사요시 니혼대 교수는 “직장과 쇼핑, 식당, 놀이공간, 학교, 주거지가 한 공간에 뭉쳐진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 실험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도쿄의 도시 경쟁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 규제 풀어 ‘현대판 마을 만들기’
지난해 11월 문을 연 아자부다이힐스(최고 64층)는 도쿄식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의 가장 최근 사례다. 낡은 목조주택이 모여 있던 대지 6만3900㎡를 모리JP타워(오피스), 레지던스 2개 동(주거 1400가구), 가든플라자 3개 동(상업·전시), 국제학교로 이뤄진 복합건물로 탈바꿈시켰다. 녹지 면적이 2만4000㎡로 전체 대지의 3분의 1에 달한다.
아자부다이힐스에서 도쿄 메트로 히비야선 가미야초역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는 휴일에도 인파로 가득하다. 초입에는 유명 케이크 전문점인 하브스와 교토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아라비카커피가 입점해 있다. 조명 아트 전시장인 팀랩 보더리스와 명품 매장을 거쳐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면 언덕 위 정원이 나온다. 도쿄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계된 이 정원은 문을 열자마자 지역 명소가 됐다. 레스토랑, 커피전문점, 약국, 편집숍, 서점 등 점포 수는 총 179개. 전시장과 식당가, 쇼핑몰을 둘러본 뒤 정원에서 쉴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해 집객 효과를 최대한 끌어냈다.
레지던스 A·B동, 미술작품을 본뜬 가든플라자 3개 동이 하나의 ‘미니 도시’를 이룬다.
모리JP타워 안에 있는 국제학교(브리티시 스쿨 인 도쿄)와 게이오대 예방의료센터도 이 건물의 차별화 포인트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시청 근처 무교동 전체가 모든 도시 기능을 갖춘 ‘현대식 마을’로 재구성된 셈이다. 모리빌딩 관계자는 “글로벌 인재가 살기에 적합한 도시를 만들자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아자부다이힐스는 디벨로퍼인 모리빌딩과 토지주, 정부가 뜻을 합쳐 이룬 성과다. 모리빌딩은 1989년부터 끈질기게 토지주 330명과 소통하며 신뢰를 쌓았다. 정부는 아자부다이힐스를 2016년 특구로 인정해 용적률을 당초 350%에서 990%까지 높여줬다.
국가 특구로 인한 건설 투자 효과 23조엔
도쿄에서 국가전략특별구역으로 지정돼 용적률 혜택을 받은 곳은 지난 6월 말 기준 55곳에 달한다. 2014년 3곳에서 매년 5개씩 늘어나고 있다. 문을 열자마자 지역 명소가 된 도라노몬힐스(637%→1450%), 미쓰이부동산의 니혼바시다카시마야(800%→1400%) 등이 대표적이다. 미나토구 도라노몬힐스역에서 롯폰기역까지 늘어선 모리빌딩의 ‘힐스’ 시리즈도 특구의 산물이다. NTT도모코, 텐센트, 월트디즈니, 구글, 라이엇게임즈 등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정부도 내각부 주재로 도쿄도·자치구·디벨로퍼가 참여하는 특구 회의에서 도시계획 제안 6개월 이내에 한 번에 결정해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다. 도쿄도는 특구로 인한 건설 투자 효과가 23조엔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모리빌딩과 스미토모부동산은 아자부다이힐스와 롯폰기힐스 중간에 ‘제2 롯폰기힐스’도 추진 중이다. 대지 10만1000㎡에 오피스·주택·상업시설 등을 갖춘 지상 66층(327m) 7개 동을 짓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나카가와 교수는 “일본은 10여 년 전부터 노동생산성이 감소하고 있다”며 “지식 기반 산업과 인재가 한곳에 모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도심부를 재정비하는 게 고령화 해법”이라고 말했다.
도쿄=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日, 복합개발 때 리츠로 자금조달…韓은 사업비 90% PF에 의존
일본 리츠 시총 15조엔…韓의 10배
배당 높고 도심공실률 0.8%로 낮아
미쓰이·미쓰비시·모리 등 대기업들
리츠에 우량자산 판 후 개발비 마련
일본 도쿄 도심에서 20년에 걸쳐 대규모 복합개발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엔 리츠(부동산투자회사)가 있다. 사업비 90%가량을 단기 금융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의존하는 국내 개발사업과 다르게 미쓰이·미쓰비시·모리 등 일본 대형 디벨로퍼는 우량 자산을 리츠에 매각해 자금을 마련한 뒤 이를 개발에 투입한다. ‘자기자본’ 비중이 월등히 높아 금리 변동에 흔들리지 않은 것도 장기간 개발을 이끌 수 있었던 요인이다.
6일 일본 부동산증권화협회에 따르면 일본 리츠(J-REITs)의 시가총액은 지난달 말 기준 14조7700억엔, 편입자산 총액은 23조1600억엔에 달한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한국(시가총액 8조원, 편입자산 22조원)보다 10배 크다. 일본 리츠가 규모를 불린 배경에는 도입 초기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탄탄한 스폰서가 있었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일본 대형 디벨로퍼는 대표 리츠를 가지고 있다. 미쓰이부동산은 최대 규모 리츠인 일본빌딩펀드, 미쓰비시지쇼는 2위인 일본부동산투자신탁, 모리빌딩은 모리힐스리츠 등을 보유했다. 모리힐스리츠의 대표 자산은 도쿄의 ‘트로피 애셋’(상징성 있는 자산)으로 불리는 롯폰기힐스 모리타워다. 리츠 자산 대부분이 도쿄 도심인 미나토구에 있어 공실률이 0.8%로 낮다는 게 특징이다.
미쓰이의 일본빌딩펀드는 총 69개 자산을 거느린 초대형 리츠(1조4656억엔)다. 미나토구·주오구·지요다구·신주쿠구·시부야구 자산 비중이 65%에 달하고, 공실률은 2%에 불과하다. 미쓰비시의 일본부동산투자신탁은 도쿄역 마루노우치에 있는 미쓰비시UFJ 신탁은행 본사가 대표 자산이다. 이 리츠를 맡아 운용하는 신탁은행의 본사를 대표 자산으로 편입해 신뢰를 높였다.
일본 리츠는 차입 비중이 작아 금리에 덜 노출돼 있다. 일본빌딩펀드의 담보인정비율(LTV)은 건물마다 36~46%로 관리되고 있다. 통상 60%대 중반인 한국 리츠와는 차이가 크다. 디벨로퍼의 신용도가 높아 대출에 따른 부담도 작다.
도쿄도 서울처럼 사무실 근무를 선호해 오피스 임대료가 높은 것도 리츠가 인기를 끄는 배경이다. 배당수익률은 연 4%로 일본은행(BOJ) 기준금리보다 높다. 2003년 이후 배당과 주가수익률을 더하면 연평균 8.3%로, 서울 아파트 상승률보다 높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도쿄 대개조 주도한 일본 3대 디벨로퍼…분양보다 임대 집중
韓은 즉시 분양 후 대출상환
도쿄의 대규모 도심 재개발 사업은 민간 디벨로퍼 주도로 이뤄낸 겁니다.
데구치 아쓰시 도쿄대 교수
미쓰이·미쓰비시·스미토모 등 일본 3대 대기업 계열 디벨로퍼는 각각 니혼바시와 마루노우치, 신주쿠·롯폰기에 수십조원 단위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분양하지 않고도 수십 년 단위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배경이다. 미쓰이부동산의 ‘미드타운’, 모리빌딩의 ‘힐스’ 시리즈 등이 성과를 내면서 토지주가 개발에 적극 협력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토지 매입 부담이 큰 탓에 지역 전체를 고려하기보단 소규모 개발 후 분양으로 대출을 갚기 바쁜 국내 디벨로퍼와 큰 차이가 있다.
6일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디벨로퍼 1위 미쓰이부동산의 보유 자산은 7조4000억엔(약 66조원)이다. 상장 리츠까지 더하면 총 12조엔(약 107조원)으로 불어난다. 2위인 미쓰비시지쇼는 6조9000억엔이고, 리츠를 더하면 9조엔이다. 3위인 스미토모부동산은 리츠 없이 7조엔의 자산을 갖고 있다. 롯폰기힐스·아자부다이힐스로 알려진 모리빌딩 자산은 3조2000억엔(약 29조원) 정도다. 국내 최대 디벨로퍼인 MDM(2조3778억원)과 격차가 크다는 평가다. 미즈호은행 조사부는 “일본의 디벨로퍼는 부채비율이 높지 않아 낮은 자기자본비율로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본 디벨로퍼는 매각(분양)보다는 임대 사업에 집중한다. 보유한 땅을 개발하는 만큼 단기적으로 분양을 통해 차입금을 상환할 필요가 없어서다. 장기적으로 지역의 가치를 높이면 임차수익도 따라올 것이라는 전략이다. 스미토모부동산은 지난해 영업이익(2547억엔)을 전액 임대로만 벌었다.
높은 부채비율 때문에 3000㎡만 매입해 개발한 뒤 분양하는 국내 디벨로퍼와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