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복합 상권 ‘힙지로’…도시 상권의 대표주자
서울 도심의 노후 산업지대였던 중구 을지로 일대. 유서 깊은 이곳은 오랫동안 ‘힙지로’라는 별칭과 함께 도시 상권의 대표주자로 사랑받고 있다. 인쇄·조명·타일 등 제조·도소매 점포가 밀집했던 골목에 감성 주점과 노포, 이색 카페가 층층이 스며들며 모두를 사로잡았다.
상권 분석

(맥주를 즐기는 시민들로 붐비는 을지로3가 노가리골목. 사진=연합뉴스)

을지로3가역 인근은 낮에는 업무 공간이지만, 밤만 되면 야간 방문 수요가 몰리는 복합 상권으로 변모한다. 어느새 점심 직장인까지 섭렵하고 있다. 힙지로를 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을 중심으로 분석해본다. 힙지로를 구역별로 나눠보자. 을지로3가역 3·4번 출구 인근에는 만선호프와 노가리 골목 등이 대표적인 명소(1번 구역)로 자리 잡고 있다. 10번 출구에서 충무로역으로 향하면 직장인 회식, 평일 점심 수요를 흡수할 중형 식당(2번 구역)이 많다. 5번 출구 일대부터 세운상가까지 분위기 좋은 골목 카페와 주점 등 점포(3번 구역)들이 즐비해 여러 세대 발길을 끌어모은다. 7·8번 출구 주변으론 노포, 고깃집, 바, 카페 등이 다채로운 상권(4번 구역)을 이루기도 한다.
구역별 매출로 본 힙지로
힙지로는 이처럼 규모감을 갖추면서 모든 연령층이 접근할 수 있는 국내 ‘톱티어’ 상권이다. 힙지로의 연간 매출은 2020년 2341억 원에서 2022년 3896억 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으며 엔데믹 당시 44.2% 성장률을 보였다. 2023년 4378억 원으로 최고점을 기록했지만, 이후 2024년과 2025년에는 매출 성장이 잇따라 둔화했다. 올 상반기 누적 기준 매출은 2000억 원가량이다.
전체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곳은 2번 구역이다. 2020년부터 2026년 상반기까지 누적 매출은 1조5415억 원이다. 2023년 2986억 원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다음 해 하향곡선을 그렸다. 1번 구역 역시 2020~2023년 매출이 늘어나다가 2024년 604억 원, 2025년 561억 원으로 감소했다.
3번 구역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80% 가까이 급증했다. 4번 구역은 460억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힙지로는 성숙기에 접어든 구역과 뒤늦게 성장세를 보인 권역이 공존하고 있다. 핵심 축인 노가리 골목과 직장인 중심 지역을 바탕으로 상권을 견고히 하는 한편, 여타 권역도 안정적인 추세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일부 약세 지역의 부진을 다른 권역이 상쇄하기도 한다.

먹거리 넘어 체류형 관광 상권으로
전체 누적 매출 가운데 음식업이 약 1조5890억 원으로 68%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노포와 감성 주점, 카페를 중심으로 시작된 힙지로 정체성이 드러난다. 소매(10.1%)·숙박(9.9%)·오락(9.5%)업이 뒤를 잇고 있다. 2번 구역은 음식·오락업 중심의 야간 소비형 특성을 보인다. 4번 구역은 숙박시설 수요가 매출을 크게 떠받치는 구조다. 3번 구역은 소매와 숙박 비중이 고르게 높다.
힙지로는 음식업을 기준으로 구역별 오락·숙박·소매업 등 보조 엔진이 지탱하고 있다. 이런 업종 분화는 상권 리스크를 분산하는 완충 장치로도 작동한다. 특정 업종 수요가 위축되더라도 다른 업종이 매출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음식업 편중도가 높은 만큼, 트렌드 변화나 청년층의 외식 소비 위축은 상권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음식업은 매년 성장하며 힙지로의 흔들림 없는 기반임을 입증했다. 주목할 점은 가장 빠르게 성장한 업종이 따로 있는데, 바로 숙박업이다. 지난해 숙박 매출은 643억 원(2025년)으로 최근 5년간 382% 성장하며 전 업종 중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힙지로가 체류형 관광 상권으로 외연을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근에 남산이 위치하고 외국인 유입이 활발하다는 점이 요인으로 꼽힌다.

반면 오락업은 2023년 701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5년 73억 원까지 약 90% 급락했다. 팬데믹 회복기 집중됐던 유흥·엔터테인먼트 수요가 빠르게 정상화되면서 빠져나간 결과다. 음식업의 지속성과 숙박업의 약진이 오락업 부진 공백을 메우며 힙지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평일 매출이 이끈다
요일별 매출 추이를 보면, 전형적인 주중 중심 상권이다. 평일 매출이 전체의 78.5%를 차지한다. 대규모 주거지를 지닌 생활 상권이 아니라 인근 직장인과 산업 종사자의 업무·식사 수요가 떠받치는 오피스 상권의 모습이다. 주초에서 주말로 갈수록 매출 비중이 높아진다. 월요일(13.8%)부터 점차 높아져 금요일(17.8%) 최고점에 도달한다.

주말을 앞두고 회식과 모임이 집중되는 ‘불금’ 수요에 따라 금요일 매출이 월~목요일 평균보다 비교적 높다. 금요일 이후 매출은 급락한다.
토요일(13.2%)도 여가·모임 수요가 유지되지만, 일요일(8.3%) 한 자릿수로 최저치를 보인다. 배후 주거 인구가 적은 도심 상권의 약점이자, 일요일 특화 가족 콘텐츠나 이벤트를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시간대별 매출 ‘각양각색’
시간대별 매출을 톺아보면 힙지로 네 구역이 서로 다른 시간대에 깨어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공통분모는 점심이다. 점심 시간대(11~15시)가 하루 매출 중 최고점이며 비중은 32%가량이다. 도심 업무지구를 배후에 둔 상권답게 인근 직장인과 종사자의 점심 수요는 구역을 구분하지 않고 상권 전체를 떠받치고 있다.
점심 이후에는 힙지로 핵심 상권인 2번 구역의 저녁 비중이 점심을 제외한 시간대 중 가장 높다. 특히 오후 8시 이후 야간 비중이 총 35%에 달한다. 노가리 골목과 만선호프 인근도 밤·심야 비중이 30%를 웃돈다. 노포와 감성 주점을 찾는 방문객의 체류 소비가 저녁을 채우는, 이른바 ‘힙지로의 밤’을 상징한다. 4번 구역은 낮 시간대 비중이 60%에 육박한다. 아침(10.7%)과 오후(17.4%) 시간대 매출이 눈길을 끈다. 새벽(1~5시) 매출 비중이 10.7%로 타 구역(3~7%)의 2배에 이른다. 저녁에 잦아들었다가 새벽에 다시 오르는 이 추세는 도매·인쇄 등 재래 산업 활동과 24시간 업소의 매출이 반영된 수치로 추정된다.
정오의 점심 수요가 상권을 활성화하지만, 오후부터는 구역별 다른 리듬을 타는 힙지로. 한낮 산업·업무 지역이 밤에는 유흥과 체류로 바통을 이어받고 일부는 새벽까지 불을 밝힌다. 하나의 지하철 생활권이 시간대별로 24시간 가까이 수익을 창출하는, 단일 업종이나 시간대에 의존하지 않는 복합 상권이 바로 힙지로다.

청년부터 중년까지 공존
힙지로 주요 고객층은 30대다. 30대 매출은 5075억 원으로 전 연령층 가운데 최고치이며 전체 3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 20대(23.3%), 40대(22.1%) 비중도 비슷하다. 2030세대가 39%(9121억 원)를 차지해 청년 주도 상권이지만, 중년층(40·50대)도 28%(6549억 원)로 비교적 높은 숫자를 보인다. 즉, 30대를 주축으로 20대와 40·50대가 공존하는 상권이다.
선호 구역은 연령대에 따라 나뉜다. 30·40대는 노가리 골목과 만선호프 인근을 선호한다. 50대는 다른 패턴을 보이는데, 을지로16길 인근(4번 구역) 선호도가 높다. 60대 이상은 1·2번 구역을 선호하지 않는다.
아울러 20대는 여성이 62.9%로 높은 비중을 나타낸다. 30대부터는 남성이 57%를 차지한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남성 비중이 증가해 60대 이상에서는 71.9%에 이른다. 흥미롭게도 20대 여성과 30대 남성의 매출 규모는 거의 같지만 소비 성격이 정반대다. 20대 여성은 감성 주점·카페·소매를 통한 소비를 주도하는 반면, 30대 남성은 직장인 회식·모임의 주체로서 1·2번 구역을 고루 찾고 있다.

50대 이상은 남성이 3·4번 구역의 도매·숙박·산업 수요를 주도한다. 한 상권 안에 20대 여성의 감성 힙지로, 30대 남성의 비즈니스 상권, 여기에 50대 이상 남성의 산업 기반 소비가 한데 모여 있다.
사계절 꾸준한 상권
힙지로의 계절성은 대체로 완만하지만, 상대적으로 봄철 성수기가 뚜렷한 구조를 보인다. 봄(3~5월) 매출이 26.9%, 가을(9~11월)이 22.6%로 각각 가장 높고 낮다. 일반 상권의 변동성(30~40%)에 비하면 음식업 비중이 높은 상권 특성상 연중 고른 소비 형태를 보인다. 겨울(24.7%)이 여름(25.8%)보다 낮지만, 간극이 크지 않아 겨울 역시 비교적 양호한 매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낮은 변동성은 음식업 중심의 소비가 날씨와 무관하게 연중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노포·주점 업종이 외부 기후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것도 한몫한다. 가을철은 그러나 상권 내 다른 계절 대비 비수기에 해당한다. 계절 마케팅, 이벤트를 통해 수요를 보충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로컬과 글로벌의 교차점
힙지로는 광역 수도권 기반의 도시 상권이다. 서울·경기 지역 유입이 전체 71%를 차지, 이 중 서울이 46.2%(8279억 원)로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다음은 경기도가 21.5%(3841억 원)로 뒤를 잇는다. 주말 여행·특별 외출 수요를 안정적으로 지탱한다. 을지로라는 도심 위치의 이점을 활용해 수도권 소비자를 포섭하는 구조다. 지하철 2·3호선 환승역이라는 높은 접근성이 광역 유입을 뒷받침한다.
해외 유입 비중은 14.9%로 도시 상권의 특수성을 드러낸다. 명동·강남과 인접한 도심 관광지 특성에 ‘K-트렌드 수요(노포 감성 소비)’까지 더해진 결과다. 다만 구역별 격차가 크다. 1번 구역의 해외 비중은 30.3%지만, 2번 구역은 10.3%다. 관광 기능과 명동 근접성이 1번 구역을 관광객 동선에 자연스럽게 포함하는 반면, 2번 구역은 로컬 소비(서울 47.3%·경기 23.2%)에 더욱 의존적이라 내국인 중심의 감성 주점 거리 성격을 강하게 띤다.
기타 지역은 14.2%다. 도시 상권이 지방에까지 알려지려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입소문과 일정 브랜딩이 필요하다. 힙지로는 지방 고객을 특별히 유치하지 않으면서도 견고한 수익을 유지한다. 로컬 중심이면서 동시에 관광지 입지를 갖춘 균형 잡힌 구조다. 향후 지방 고객 유입을 확장할 여력이 충분하다.

급성장 넘어 지속 가능한 상권으로
힙지로는 팬데믹 회복기를 지나 성숙기에 진입하며, 모멘텀이 특정 구역에서 인근 권역으로 재배치되는 형세다. 향후 구역별 업종 재편과 해외·지방 관광 유입, 현재 이용 수요의 지속 여부에 따라 상권의 성장 경로도 달라질 전망이다.
분명한 건 힙지로 경쟁력이 어느 한 곳에 의존하지 않고 네 구역이 하나의 권역 내 분업하며 만들어내는 구조적 다양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핵심 블록의 실적 변화가 상권 전체에 즉각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동시에 성격이 다른 구역들이 서로 다른 시점에 성장 동력을 이어받으며 매출을 방어하는 완충 역할도 한다. 실제로 2024~2025년 핵심·오피스 구역이 조정 국면에 들어섰을 때도 을지로16길이나 5번 출구 인근 상권이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며 하락 폭을 줄였다.
올 상반기 부분적 반등을 보인 힙지로는 연내 실질적인 경쟁력을 재검증하는 단계다. 직장인 중심 권역의 회복이 지속될지, 세운상가 인근 매출이 안정화할지, 그리고 을지로16길 부근의 안정세가 장기적으로 갈지, 아니면 주말 수요 위축 신호인지 등이 주요 관전 요소다. 이런 흐름이 향후 힙지로 상권의 성장 경로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것은 팬데믹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힙지로는 더 이상 급성장 가능성을 입증해야 하는 상권이 아닌 지속 가능한 국내 톱티어 상권이라는 것이다. 그 경쟁력을 계속 증명해 나갈 차례다.
※ 출처: 한경MONEY(magazine.hankyung.co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경매거진&북에 있으며, 본문에 인용된 상권 매출 데이터는 핀다 오픈업 집계 기준이므로 개별 점포의 실제 실적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창업·투자 판단은 반드시 관련 전문가와 상담 후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