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실인데도 안심할 수 없다…오피스 가치는 ‘다음 임차인’이 결정한다

여의도엔 금융이 늘고 판교선 IT가 줄었다…공실률보다 미래 임차수요를 봐야 하는 이유

천우석의 밸류업 인사이트

만실인데도 안심할 수 없다…오피스 가치는 ‘다음 임차인’이 결정한다

오피스 빌딩 매물 설명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문구 가운데 하나가 ‘공실률 0%’다.

임차인이 꽉 차 있고 임대료도 제때 들어온다면 당장은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매입을 검토하는 투자자도 현재 임대수익을 기준으로 건물 가치를 계산하기 쉽다.

하지만 오피스 투자는 지금 찍힌 사진 한 장을 사는 일이 아니다.

3년 뒤, 5년 뒤에도 지금의 임차인이 같은 면적을 사용할까? 계약이 끝난 뒤 그 공간을 채울 다음 임차인은 누구일까? 그때도 지금과 같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을까?

최근 서울 오피스 시장에서 나타나는 임차업종 변화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가 서울 도심권(CBD), 강남권(GBD), 여의도권(YBD)과 판교의 A급 이상 오피스 167개를 조사한 결과, 올해 금융업의 임차면적 비중은 33.6%로 전년보다 높아졌다. 반면 IT업종은 임차면적과 입주기업 수가 모두 줄었다.

여의도 A급 오피스에서 금융회사가 사용하는 면적은 전체의 60.9%에 달한다. 증권사 등의 이전과 확장이 이어지면서 일부 신축 오피스는 금융사가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판교에서는 다른 숫자가 나왔다. IT업종 비중은 1년 사이 7.9%포인트 낮아졌고 제조업은 6.6%포인트 높아졌다. 네이버가 빠진 공간에 현대자동차가 들어온 영향도 컸다.

그런데 이 숫자는 조금 조심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통계상 현대자동차는 제조업이다. 그렇다고 판교에서 자동차 생산라인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기아가 판교 테크원에 두고 있는 AVP본부 연구거점에서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기술을 다룬다. 현대차그룹 역시 최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 자율주행 기술 내재화를 강조하며 관련 조직과 인력을 확대하고 있다.

산업분류표에서는 IT가 줄고 제조업이 늘었지만, 그 사무실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지는 이유다.

자동차산업은 이미 내연기관을 전기차로 바꾸는 단계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AI, 자율주행, 반도체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제조기업 안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와 연구개발 인력이 늘어날수록 ‘IT기업의 오피스 수요’와 ‘제조기업의 오피스 수요’를 깔끔하게 나누기도 어려워진다.

판교의 변화를 단순히 IT가 빠지고 제조업이 들어왔다고 보기보다, 기술기업이 모인 입지를 자동차와 제조 대기업의 첨단 연구개발 조직까지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편이 실제 공간수요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임차인의 업종만큼 그 사무실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봐야 한다는 얘기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역시 이번 변화를 업종 간 단순한 성장과 쇠퇴보다 ‘수요 재편’으로 해석했다. 일부 대기업은 비용 절감과 공간 효율화를 위해 면적을 줄이고 있지만 AI 관련 기업을 비롯한 새로운 성장산업에서는 별도의 오피스 수요가 생기고 있다.

사무실 면적을 줄였다고 반드시 사업이 위축됐다는 뜻도 아니다.

기업들은 고정 좌석을 줄이고 회의실과 라운지, 협업공간을 늘리는 식으로 사무공간을 다시 짜고 있다. 같은 인원이 근무해도 필요한 면적과 공간 구성은 달라진다. 전체 임차면적은 줄면서도 업무환경에 대한 요구 수준은 높아질 수 있다.

이 변화는 노후 오피스에 더 불리하게 작용한다.

층고와 전용률, 엘리베이터, 냉난방 방식, 전력과 통신 인프라, 공용공간 같은 요소가 새로운 임차인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을 중심으로 에너지 효율과 친환경 성능도 건물을 고르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 2분기 시장을 봐도 공실률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모습이 나타났다.

CBRE에 따르면 서울 3대 업무권역 A급 오피스 평균 공실률은 신규 공급의 영향으로 전 분기보다 높아졌다. 그런데 같은 기간 신규 임대차 면적은 약 14만4000㎡로 2025년 1분기 이후 가장 많았다.

공실은 늘었지만 기업들의 이전과 확장 수요까지 동시에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알스퀘어 조사에서도 신규 공급으로 서울 오피스 공실이 늘어난 가운데 임대료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CBRE와 알스퀘어는 조사대상과 등급 기준이 달라 공실률 수치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각 조사 안에서 확인되는 현상은 흥미롭다. 공급이 늘어 빈 공간이 많아져도 모든 건물의 임대 경쟁력이 똑같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실인데도 안심할 수 없다…오피스 가치는 ‘다음 임차인’이 결정한다

반대로 현재 만실이라고 앞으로도 안정적이라는 보장도 없다.

건물주나 투자자는 임대차 현황표에서 임대율 다음 줄을 봐야 한다.

어떤 업종이 얼마의 면적을 쓰고 있는지, 주요 임차인의 계약은 언제 끝나는지부터 확인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기업이 해당 건물에서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도 볼 필요가 있다.

본사 관리조직인지, 연구개발 조직인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근무하는 곳인지에 따라 앞으로 필요한 공간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업종의 비중이 높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

여의도가 금융업에 특화돼 있는 것은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금융회사와 관련 서비스 기업이 모이고 전문인력이 집중되면서 다시 새로운 금융회사를 끌어들이는 집적효과가 생긴다.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특정 업종에 임차인이 몰려 있으면서 그 기업들이 동시에 공간 효율화에 나서거나, 주요 임차인의 계약 만기가 비슷한 시기에 찾아오는 경우다.

지금 100%인 임대율이 몇 년 뒤 한꺼번에 흔들릴 수도 있다.

임차인이 빠져나간 뒤에는 공실 기간의 임대료 손실만 생기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는 과정에서 렌트프리를 제공할 수 있고, 인테리어 공사비를 일부 지원하거나 노후 설비를 손봐야 할 수도 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가 올해 제시한 서울 오피스의 평균 인테리어 구축비는 ㎡당 약 202만원이다.

이는 새로운 업무공간을 구축하는 시장 평균 비용이다. 임차인이 바뀔 때마다 건물주가 이 금액을 모두 부담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계약에서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비용을 어떻게 나눌지가 협상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명목 임대료만 보고 계약의 수익성을 판단하면 착시가 생긴다.

같은 월 임대료를 받더라도 렌트프리가 없는 계약과 몇 개월의 렌트프리, 인테리어 지원이 포함된 계약은 건물주에게 남는 돈이 다르다. 투자자가 실질임대료를 따지는 이유다.

CBRE 조사에서도 올해 2분기 서울 A급 오피스의 명목 임대료와 실질임대료가 모두 상승했지만, 실질임대료 상승 속도는 이전보다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계약서에 적힌 임대료보다 실제로 건물주에게 얼마가 남는지가 더 중요하다.

여기까지 계산하면 ‘지속 가능한 NOI’도 달라진다.

현재 임대율 100%를 전제로 만든 순영업소득이 앞으로도 그대로 이어진다고 가정하기는 어렵다. 주요 임차인이 나갔을 때 예상되는 공실기간과 렌트프리, 임차인 유치비용, 건물 리뉴얼 비용까지 감안해 정상적인 상태에서 어느 정도의 NOI를 만들 수 있는지 다시 계산해야 한다.

안정화 NOI가 낮아지면 자산가치도 달라진다.

현재 연간 NOI가 50억원인 건물도 주요 임차인의 이전 가능성과 재임대 비용을 반영한 안정화 NOI가 45억원이라면, 같은 Cap Rate을 적용해도 가치는 낮아진다.

대출 만기까지 비슷한 시기에 돌아온다면 영향은 더 커진다.

올해 2분기 서울 A급 오피스의 Cap Rate은 약 4.2%로 전 분기와 같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면 향후 Cap Rate에도 압력이 생길 수 있다.

이때 NOI까지 줄어들면 차환 과정에서 담보가치와 상환여력을 다시 평가받을 수 있다.

임차인 분석이 단순한 임대관리 문제가 아닌 이유다.

판교 사례로 돌아가 보면 투자자가 볼 것은 ‘IT -7.9%포인트, 제조업 +6.6%포인트’라는 숫자에서 끝나지 않는다.

현대차처럼 제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이 판교에서 자율주행과 SDV 같은 기술을 개발한다면 그 회사가 원하는 오피스 환경은 전통 제조업 본사의 수요보다 IT·R&D 조직에 가까울 수 있다. 기술인력을 확보하기 쉬운 위치인지, 협업하기 좋은 공간인지, 충분한 전력과 통신 인프라를 갖췄는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산업 간 경계가 흐려질수록 임차인 업종표만으로 미래 수요를 읽기는 더 어려워진다.

오피스의 최유효이용(HBU·Highest and Best Use) 역시 이런 변화와 연결된다.

최유효이용은 사무실 면적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앞으로 그 공간을 사용할 기업과 인력의 수요에 맞아야 한다.

대기업 한 곳이 통으로 사용하는 형태보다 여러 성장기업이 쓸 수 있도록 공간을 나누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노후 오피스라면 대규모 증축보다 공용공간과 설비, 출입구와 동선,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임차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임차인이 누구인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 회사가 어떤 업종인지, 그 건물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앞으로 필요한 인력과 면적은 늘어날지 줄어들지, 계약이 끝난 뒤 어떤 기업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를 보는 것이다.

만실은 좋은 신호다. 다만 그것은 오늘의 숫자다.

오피스 투자는 계약이 끝난 뒤의 공실과 다음 임차인까지 사는 일이다.

현재 임대율보다 더 오래 봐야 할 것은 미래의 임차수요다.

[관련 기사·자료]

한국경제 「여의도 오피스 면적 60% 금융사가 쓴다…판교선 IT ‘급감’」 2026.9.11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91184716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 「2026 서울 오피스 임차사 업종 변화 보고서」 2026.9.8

https://www.cushmanwakefield.com/ko-kr/south-korea/insights/seoul-office-tenant-profile-report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2026 서울 오피스 임차사 업종 변화 보고서’ 발간」 2026.9.14

https://www.cushmanwakefield.com/ko-kr/south-korea/news/2026/09/cushman-and-wakefield-korea-publishes-2026-seoul-office-tenant-sector-trends-report

CBRE 코리아 「Seoul Figures Q2 2026」 2026.7

https://www.cbrekorea.com/insights/figures/seoul-figures-q2-2026-%EA%B5%AD%EB%AC%B8-

CBRE 코리아 「2분기 서울 오피스 신규 임대차 2025년 1분기 이후 최대…신규 공급 영향으로 평균 공실률 4.2%로 상승」 2026.7.27

https://www.cbrekorea.com/press-releases/seoul-figures-q2-2026

알스퀘어 「2026년 2분기 오피스 마켓 리포트」 2026.8

https://research.rsquare.co.kr/research/reports/2026-q2-office-market-report

알스퀘어 「오피스 공실 늘었지만, 임대료는 내리지 않았다」 2026.8.12

https://www.rsquare.co.kr/media-room/?bmode=view&idx=173439153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Office Fit Out Cost Guide 2026」 2026

https://www.cushmanwakefield.com/ko-kr/south-korea/insights/office-fit-out-cost-guide


천우석 한경닷컴 부장(CC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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